정부의 말은 항상 변해왔다. 하나만 잘 나아서 기르자, 둘도 필요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지금은 하나는 부족합니다 라는 말을 한다.


내가 왜 저출산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가장 효과적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는 생산성 인구가 공급 과잉이 되어 있다.


취업난, 청년 실업, 저임금, 비정규직, 인턴, 계약직, 야근, 박봉 월급, 눈치 보이는 휴가 사용, 구조조정, 여성 일자리 등 문제가 많다.


정부는 말한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므로 청년 1명이 노인 7~8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또한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성 인구가 감소하여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결국엔 정부가 저출산을 외치는 이유는 세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구수가 곧 돈이다.(인구 = 돈 = 세금) 정부에서 보는 개개인은 하나같이 개미이고 돈이다.

정부는 국가라는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정부를 고위공직자, 기득권층이 소유하고 있다. 우린 노예나 다름 없다. 그나마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한 개 돼지이다.


우리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자. 예전 시대와 지금 시대가 별반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는가? 

발전한 것이라곤 기술, 의료, 교육, 과학 등이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선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신분제가 폐지 되었다고 하지만 신분제는 공공연하게도 아직도 존재한다. 변하지 않았다.


저출산이 해결되면 이득을 보는 계층은 기득권층이다.

저출산이 해결 되지 못하면 이득을 보는 계층은 중산층이하 사람들이다. 중산층도 양극화로 점점 무너지고 있다.


지금의 경쟁 시스템은 야생과도 같다. 우리 개개인은 사회라는 야생에 내던져진다. 끝 없는 경쟁을 통해 서로를 짓 밟고 올라간다. 

거기서 최정상에 올라온 이들만 기업에서 데려가고 나머지들은 다 버려진다.


그 버려진 소외계층은 비정규직, 인턴, 계약직을 연연하다 빛을 못 보고 전락한다. 

그 결과 사회는 온갖 중독자들이 넘쳐나고 범죄율이 증가한다. 사기꾼이 증가하게 되고 증오 범죄가 일어난다.

취업난이 심해져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게 됐다.


사회는 돌고 돈다. 소용돌이 처럼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모든 것이 연결 되어 있다. 인과율이다.


경제적으로 낙오된 사람들은 인간 관계 또한 줄어들기 마련이며 다양한 문화적 활동에서도 배제된다.

돈이 없으면 시간적 여유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할 수는 없다. 일본이 훨씬 선진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을 많이 닮았다.

일본이 밟고 간 길을 그대로 밟고 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10년 ~ 20년 정도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인력난을 겪고 있다. 구직난이 심한 우리나라와는 극단적인 반례다.


일본은 현재 취업이 매우 잘 되고 있다. 대략 3가지 이유가 있다.

1. 일본의 30~40대가 프리터로 전전하며 희생 당했다. 

2. 인구 감소로 인해 노동 인구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3. 20년강 경기 장기 침체로 인해 젊은 사람들의 의욕이 많이 저하되 있고 비정규직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수요와 공급 법칙과 같다. 

지금은 노동 인구가 너무 많다. 공급은 많은데 수요는 오히려 적다. 그래서 사회에 각종 부작용들이 일어난다.

만약 노동 인구가 적어진다면 수요량에도 변화가 올 것이고 각종 부작용들이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 많으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사회도 학교와 똑같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항상 선생님은 아이를 가르치기 적정한 인원은 15명에서 20명 내외 라고 하셨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한 반에 60명이 있었지만 내 세대는 35명 정도였고 그 수가 점점 줄어 들어 15명에서 20명 사이가 될 때가 온다.


한 반에 아이들이 너무 많으면 한 선생님이 전부 통제할 수 없다. 또 개개인 하나하나 보살펴주는 것도 힘들다. 

통제가 되지 않으면 무리가 생기고 세력이 생긴다. 또 그 속에서도 강자와 약자로 나뉜다. 

결국엔 학교에서도 사회에서와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사회도 학교와 마찬가지다.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경쟁은 치열해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잊게 된다.

기득권층은 서로 똘똘 뭉치고 약자를 하대한다. 그 증오심과 적대감과 사회적 패배자라는 낙인이 사회에 범죄로 기여한다.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저출산 해결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결국엔 부자와 기득권층의 욕심 버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역사를 보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분제는 변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변하려면 사회에 큰 위험이 와야한다. 그렇지 않고서 그들은 느낄 수 없다.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려면 저출산 말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항의를 하고 민원을 넣고 토론을 하고 합법 시위를 하고 불법 시위까지 벌여져도 변하지 않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계속 생산 인구가 공급 과잉 된다면 우리의 의견은 묵살된다.



결혼 후에 아이를 낳는 것이 다음 행복으로 가는 길인 걸 알고 있지만 자기자신이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를 낳는다면 전쟁터에 아이를 내던지는 것과 같다. 그건 자식을 낳을 때 부모에게 있어 축복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이기적인 것이다.


가난하고 능력 없는 사람이 아이를 낳는 건 노예가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반면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이를 낳는 건 귀족이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태어날 때 부터 출발선이 다른 곳에 서게 하는 부모는 혹독한 부모다.


삶이란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정해지고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나의 다음 행복을 위해 삶이라는 쳇바퀴에 아이를 끌어들여 고통을 줘야 할까.

또한 사람은 사후세계도 생각해야 한다. 아니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엔 죽을 때 까지 죽어서도 우리는 끊이지 않는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 내 아이에게 이런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것이 옳은 걸까.

기독교 관점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는 죄인이 된다.


결국엔 귀족들이 다음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을 거다. 그들만의 별들의 축제에서 말이다.

노예가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귀족들이 노예 출산 정책을 펼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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