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히 아이들 나오는 프로그램들을 봤었다. 내가 귀여운 걸 좋아해서 애기들 나와서 노는 프로그램이 너무 재밌었다. 애기들끼리의 그들만의 대화방식이나 놀이 방식이 흡사 리틀어른 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 웃긴면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보다 보니까 이제는 보면서 좋지 못했다.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상위 1% 아이들의 육아 일기를 보고 있자니 부정적인 생각도 들고 되려 기분이 나빠졌다.


쟤네는 태어났을 때 부터 선택받아서 애기 때부터 TV 프로그램으로 육아 일기도 만들어주고 정말 으리으리한 집에서 바닥은 전부 매트로 되어 있고 항상 즐거운 곳으로 놀러가고 남 다른 교육을 받으면서 좋은 사회관계망으로 어릴 때 부터 지내는 모습들을 보면서 아.. 왜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지 느껴졌다.


TV 프로그램이라 분명 좋은 면만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 맞긴 맞다. 그러나 애당초 연예인들의 육아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육아와는 되게 거리가 먼 육아다.

제대로 육아교육 받은 부모, 으리으리한 집, 멋있는 차, 즐거운 체험학습 프로그램, 여행, 나들이, 사람들 인기, 소재가 상대적 박탈감 느끼기 좋은 프로그램이다. 저 애기들과 내 처지를 보고 있자니 1억배는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단게 느껴진다. 정말 보다가 어느순간 괴리감이 심하게 들어 허탈해 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남다른 재력 과시, 차별성, 엘리트, 상위계층의 삶. 정말 본 뜻의 소재는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소재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뭐 때문에 봐야하는건지 모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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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말은 항상 변해왔다. 하나만 잘 나아서 기르자, 둘도 필요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지금은 하나는 부족합니다 라는 말을 한다.


내가 왜 저출산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가장 효과적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는 생산성 인구가 공급 과잉이 되어 있다.


취업난, 청년 실업, 저임금, 비정규직, 인턴, 계약직, 야근, 박봉 월급, 눈치 보이는 휴가 사용, 구조조정, 여성 일자리 등 문제가 많다.


정부는 말한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므로 청년 1명이 노인 7~8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또한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성 인구가 감소하여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결국엔 정부가 저출산을 외치는 이유는 세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구수가 곧 돈이다.(인구 = 돈 = 세금) 정부에서 보는 개개인은 하나같이 개미이고 돈이다.

정부는 국가라는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정부를 고위공직자, 기득권층이 소유하고 있다. 우린 노예나 다름 없다. 그나마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한 개 돼지이다.


우리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자. 예전 시대와 지금 시대가 별반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는가? 

발전한 것이라곤 기술, 의료, 교육, 과학 등이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선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신분제가 폐지 되었다고 하지만 신분제는 공공연하게도 아직도 존재한다. 변하지 않았다.


저출산이 해결되면 이득을 보는 계층은 기득권층이다.

저출산이 해결 되지 못하면 이득을 보는 계층은 중산층이하 사람들이다. 중산층도 양극화로 점점 무너지고 있다.


지금의 경쟁 시스템은 야생과도 같다. 우리 개개인은 사회라는 야생에 내던져진다. 끝 없는 경쟁을 통해 서로를 짓 밟고 올라간다. 

거기서 최정상에 올라온 이들만 기업에서 데려가고 나머지들은 다 버려진다.


그 버려진 소외계층은 비정규직, 인턴, 계약직을 연연하다 빛을 못 보고 전락한다. 

그 결과 사회는 온갖 중독자들이 넘쳐나고 범죄율이 증가한다. 사기꾼이 증가하게 되고 증오 범죄가 일어난다.

취업난이 심해져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게 됐다.


사회는 돌고 돈다. 소용돌이 처럼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모든 것이 연결 되어 있다. 인과율이다.


경제적으로 낙오된 사람들은 인간 관계 또한 줄어들기 마련이며 다양한 문화적 활동에서도 배제된다.

돈이 없으면 시간적 여유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할 수는 없다. 일본이 훨씬 선진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을 많이 닮았다.

일본이 밟고 간 길을 그대로 밟고 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10년 ~ 20년 정도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인력난을 겪고 있다. 구직난이 심한 우리나라와는 극단적인 반례다.


일본은 현재 취업이 매우 잘 되고 있다. 대략 3가지 이유가 있다.

1. 일본의 30~40대가 프리터로 전전하며 희생 당했다. 

2. 인구 감소로 인해 노동 인구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3. 20년강 경기 장기 침체로 인해 젊은 사람들의 의욕이 많이 저하되 있고 비정규직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수요와 공급 법칙과 같다. 

지금은 노동 인구가 너무 많다. 공급은 많은데 수요는 오히려 적다. 그래서 사회에 각종 부작용들이 일어난다.

만약 노동 인구가 적어진다면 수요량에도 변화가 올 것이고 각종 부작용들이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 많으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사회도 학교와 똑같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항상 선생님은 아이를 가르치기 적정한 인원은 15명에서 20명 내외 라고 하셨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한 반에 60명이 있었지만 내 세대는 35명 정도였고 그 수가 점점 줄어 들어 15명에서 20명 사이가 될 때가 온다.


한 반에 아이들이 너무 많으면 한 선생님이 전부 통제할 수 없다. 또 개개인 하나하나 보살펴주는 것도 힘들다. 

통제가 되지 않으면 무리가 생기고 세력이 생긴다. 또 그 속에서도 강자와 약자로 나뉜다. 

결국엔 학교에서도 사회에서와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사회도 학교와 마찬가지다.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경쟁은 치열해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잊게 된다.

기득권층은 서로 똘똘 뭉치고 약자를 하대한다. 그 증오심과 적대감과 사회적 패배자라는 낙인이 사회에 범죄로 기여한다.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저출산 해결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결국엔 부자와 기득권층의 욕심 버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역사를 보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분제는 변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변하려면 사회에 큰 위험이 와야한다. 그렇지 않고서 그들은 느낄 수 없다.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려면 저출산 말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항의를 하고 민원을 넣고 토론을 하고 합법 시위를 하고 불법 시위까지 벌여져도 변하지 않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계속 생산 인구가 공급 과잉 된다면 우리의 의견은 묵살된다.



결혼 후에 아이를 낳는 것이 다음 행복으로 가는 길인 걸 알고 있지만 자기자신이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를 낳는다면 전쟁터에 아이를 내던지는 것과 같다. 그건 자식을 낳을 때 부모에게 있어 축복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이기적인 것이다.


가난하고 능력 없는 사람이 아이를 낳는 건 노예가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반면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이를 낳는 건 귀족이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태어날 때 부터 출발선이 다른 곳에 서게 하는 부모는 혹독한 부모다.


삶이란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정해지고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나의 다음 행복을 위해 삶이라는 쳇바퀴에 아이를 끌어들여 고통을 줘야 할까.

또한 사람은 사후세계도 생각해야 한다. 아니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엔 죽을 때 까지 죽어서도 우리는 끊이지 않는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 내 아이에게 이런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것이 옳은 걸까.

기독교 관점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는 죄인이 된다.


결국엔 귀족들이 다음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을 거다. 그들만의 별들의 축제에서 말이다.

노예가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귀족들이 노예 출산 정책을 펼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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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궁금했다. 정말 인간은 돈을 위해 사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름 깊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알게 되어서 읽기로 했다.


이 책에서는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경제학적인 면에서 내용들을 다룬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이다.


인센티브나 이상적인 자유시장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준다.


만약 아이의 입양을 자유시장에 맡기면 분명 더 좋은 입장을 가진 부모에게 입양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입양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윤리적 문제로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우리에게 찝찝함을 남긴다.


노벨상을 돈주고 살 수 있다면 그 명예의 가치는 훼손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충격받은 사실은 청소부 보험이라는 것이 있다. 대략 내용을 요약하면 직원 몰래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그 직원이 일하는 도중 죽게 되면 그 회사가 직원의 생명보험금을 타먹는 방식이다. 

가족들 몰래 타먹다 가족들이 알게 되어 법정 소송을 걸어도 판사는 기업 편을 손 들어 주었다.

기업은 직원에게 정당한 교육과 일을 시키고 있었기에 살아 있으면 그만한 대가를 얻었을 것이라는 말 아닌 말을 했다.


이 보험의 문제점은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 직원들의 안전을 홀대하게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최악의 문제다.


데스풀 이라고 해서 연예인이나 고위공직자들에 죽음을 도박으로 예측해서 돈을 버는 도박 사이트도 있다. 

이번년도나 내년안에 누가 죽을 것인지 각종 데이터를 수집해서 죽음을 예견하는 것이다. 이게 꽤나 신빙성이 높아서 미 국방성에서 추진했다가 대중의 비판으로 무산 됐다고 한다. 미 국방성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중동의 고위공직자들에 죽음을 예측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데이터에서 얻는 정보 양이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을 놓고 벌이는 도박을 정부의 기관이 진행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예전부터 야구 경기장이 신분을 뛰어 넘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어떠한 인종이든 모두 함께 웃고 울고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공간 이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햇볕이 쨍쨍하나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각 팀들을 응원했다. 그러나 시장이 야구 경기장에도 침범하게 되고 엘리트 주의도 한몫 더해 스카이 박스가 생겨났다. 돈 많은 자들은 스카이 박스에서 열정 없는 경기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보게 된다.





미국 사회는 볼 때마다 시장 논리의 무서움을 톡톡히 본다. 돈 있고 능력 있는 자들은 칭송 받고 존경 받고 인정 받고 돈 없고 능력 없는 자들은 정말 비참한 삶을 산다. 


책을 읽다보면 눈살 찌푸러지는 내용들이 좀 많다. 거부감 들긴 하지만 정말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심지어 간접적으로 죽이기까지 하는 행위들을 보며 시장논리가 모든 것에 좋다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돈 이라는 게 참 무섭다.


이 책의 좋은점은 어려운 말이 많이 없고 알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 차례마다 들어갈 때 주제를 하나 정하고 그에 관한 얘기들을 서술하기 때문에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간단 명료하게 책에서 알려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책 읽으면서 얻게 된 명언 같은 글귀들-


행복이란 인간의 삶이 가진 내적 목표를 충실히 실현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교육은 자신의 욕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후에 욕구를 자제하거나 향상시키라고 가르친다. 


광고의 목적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인 반면, 공립학교의 목적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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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와 특별시민 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은 변종구라는 정치인이 국회의원을 2번? 그리고 서울시장을 3선을 보고 달리는 사람이었다. 

처음 설정만 본다면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느끼는 바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얘기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결국엔 청년도 힘들고 나이먹은 사람은 나이먹은 사람대로 힘들고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 갖가지 힘드니 말이다.

정치판에 있는 사람들은 한번 자리 꿰차보겠다고 미친 듯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없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산다. 그 모습이 모두 기이한 형태로 보인다.


종교계에서 그토록 얘기하는 속세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느껴졌다.


3선에 도전하는 남자 주인공인 변종구는 정말 더러운 사람이었다. 그 아랫사람들도 참 무지막지하게 더럽지만 영화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사람의 추악함은 끝 없이 드러난다.


자기가 교통사고를 내서 군인을 죽이고도 딸한테 뒤집어 씌우고 자기 아내를 가부장적인 사람처럼 몽둥이질 하고 그의 당선을 실질적으로 보좌해주는 심혁수를 이리저리 부려먹다 그의 불신으로(불신하게된 계기는 투자에 비해 대가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집에 사람을 보내 정보를 캐게 하다 심혁수를 사고로 죽이게 했음에도 그걸 자살로 위장하게 만든 일들을 보면서 정말 더럽고 더럽다는 말 밖에 나오지를 않는다.


같은 당내 사람들도 서로의 이득을 위해 뭉친 사람들이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서로 같이 저녁을 함께 먹어도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자들이다. 다른 적 세력은 불사하고 자기 당내 사람도 믿지 못하고 자기 아랫 사람도 믿지 못한다.

그만큼 서로가 더럽고 더럽기 때문에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관계이다. 그런 관계는 원래부터 없는 관계나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사람을 나쁜 길로 물들이는데 어떤 방법이 있었다. 현실에서도 널리 쓰이는 방법을 영화에서도 그대로 반영하였다.


만약 그 사람이 없는 자라면 생계를 책임져줄 테니 일에 협조하라고 매수한다.

만약 그 사람이 욕심 많은 자라면 한 자리를 줄 테니 일에 협조하라고 유혹한다.

만약 그 사람이 순수하고 능력있는 자라면 조금 나쁜 일을 시키고 넌 그 일을 했으니 이제 너도 더러운 인간이라고 서서히 낙인 찍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스스로 자기자신을 그렇게 믿게끔 한다. 난 더러운 사람이다 라고..


사람이 한번 잘못된 길을 가면 끝 없이 구덩이로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비슷한 실험을 한 예가 있다.

무언가를 공들여 만든 것이 있는데 그걸 만들다가 실수로 살짝 부셨는데 처음에는 괜찮게 다시 만드는데 그걸 다시 살짝 부시고 또 다시 만들고 또 다시 부셔서 만들게 하면 그 사람은 자포자기한 심정을 갖게 되어 지금까지 공들여온 모든 탑을 부순다. 

아마 이러한 심리를 반영해서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박경이라는 분의 선택이 참 불가피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신념은 갖고 계셔서 변종구가 군인을 교통사고로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부터 힘든 싸움이 될 거란 것도 알고 홀로 외롭게 진실을 갖고 싸워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있던 위치에서 욕심을 버리고 내려오는 그 장면은 정말 마음이 찡했다.


또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 각 사람 마다 자기가 주어진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김낙현이라는 사람은 변종구-심혁수 아래에 있는 정치 광고를 하는 지위있는 사람인데(본부장 이었나) 성매매 하다 걸렸다. 그리고 짤리고 나서 자살시도를 하였다. 그리고 박경이라는 사람을 차에 태우고 가는데 남자들이 한 말 중에 성매매 한 것 같고 자른 것은 너무하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였다.


사실 성매매라는 것이 인류역사에 있어서 정말 긴 역사를 지녔지만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동물적인 본능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사실인 것 같다.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다. 여자도 성욕이 있지만 남자는 그것을 실질적으로 하고 싶어한다. 여자는 그걸 하는 생각을 한다면 남자는 그걸 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 차이가 매우 크다.


남자는 여자의 몸을 보고 여자는 남자의 돈을 본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인간은 교육을 받고 성장한다. 삶에서 여러 교육을 받고 다른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만의 격과 윤리를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지극히 본능적인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본능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만들고 생각하고 탐험하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도 한다. 그게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인 것 같다.


어쨋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세상 사람들마다 역할이 있다고 느껴진 이유는 같은 남자이지만 운전하는 기사가 있고 정치인들에게 돈을 받고 정보를 캐는 사람도 있고 정치인 뒷바라지 해주는 사람도 있고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있고 여자도 창녀가 있고 기자가 있고 정치인 수발을 드는 사람이 있고 정치인이 있다.


요즘은 항상 세상 살면서 느낀다. 다들 자기만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신이 사람을 만들었다면 왜 성욕을 강하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다. 사람이 최소한 자기가 동물이다 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 장치를 해둔게 아닐까 싶다.


난 또 결과를 중요시하게 생각했었다. 무언가를 내가 열심히 했다고 해도 요즘 사회는 과정 보다는 결과를 보는 사회가 되버렸다.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사람들 마인드도 그렇게 변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 온갖 더럽고 추악한 짓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심혁수가 그 말을 읊음으로써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논리를 반박한다.


항상 같은 내용 같아도 사람은 망각하기에 기존에 것에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본다. 그렇게 가볍지도 그렇게 무겁지도 않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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